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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년 역사,문화 이야기

2.환단고기는 어떤책인가?

백월산 2017. 4. 23. 10:17

2.천년의 세월이 낳은 환단고기-환단고기의 편찬과 대중화

 

 

 

 

 

 

환단고기각권의 내용

 

삼성기- 안함로의 삼성기 상과 원동중의 삼성기 하가 음양 짝을 이뤄 한민족의 국통 맥을 바로 세우고, ()문화의 원형이 '() : 인간 마음의 본성이자 현 인류의 시원 국가인 환국)' 이었음을 밝혀준다.

특히 삼성기 하12환국의 이름과 배달의 18대 환웅천황의 계보를 모두 기록하고 있다.

두 권을 함께 읽어야 한민족 상고사의 특이 확연히 드러난다.

 

단군세기- 고려 말에 행촌 이암이 엮은 역사책으로 총 2,09647대 단군의 치적과 중요한 사건을 편년체로 기록하였다.

특히 고조선사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인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를 밝혀, 한국의 간단사학계에서 해석하지 못한 고조선의 정치와 외교에 얽힌 의혹, 고조선 문화의 실체 등을 총체적으로 해명해 준다.

 

북부여기- 고려 말에 범장이 쓴 책으로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의 6대 단군 182년의 역사와 북부여에서 파생한 다른 부여의 역사를 전한다.

부여 역사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사서이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출생과 혼인에 대한 비밀을 밝혀, 북부여가 고구려로 계승되었음을 밝힌다.

 

태백일사- 조선 중종 때 이맥이 쓴 8권의 책으로 환국에서 고려까지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첫머리에 해당하는삼신오제본기는삼신오제(三神五帝) 사상과 이를 기반으로 성립된 음양오행 사상을 전하는 역사 철학서로 신교문화이 기틀을 밝힌다.

환국본기,신시본기,삼한관경본기삼성기, 단군세기에서 전하지 못한 환국- 배달- 고조선의 7천 년역사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소도경전본훈은 신교의 경전 성립사를 기록한 책으로 한민족 시원문화의 3대 경전(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참전계경(參佺戒經))을 기록하여 한민족의 우주관, 신관, 인성론과 수행문화의 원형을 밝혀준다.

고구려국본기,대진국본기,고려국본기는 각각 고구려, 대진국(발해), 고려의 역사를 주체적인 시각에서 기록하였다.

 

 

환단고기의 편찬과 대중화

 

 계연수 선생의 환단고기 편찬

 환단고기1864년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난 운초 계연수(1864~1920), 지인들로부터 구한 한민족의 정통 사서들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안함로의 삼성기는 그의 집안에 전해 내려오던 것이고, 원동중의 삼성기는 인근의 태천에 살던 백관묵에게서 구하였다.

단군세기또한 백관묵의 소장본이고, 북부여기는 삭주 사람 이형식의 소장본이었다.

태백일사는 그의 스승이자 항일운동 동지인 해학 이기의 집안에서 전해오던 것이었다.

계연수는 원래 우리 옛 역사와 민족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여 여러 양반가와 사찰을 돌아다니며 비장 서책과 금석문, 암각문등 옛 사료를 많이 수집하였다.

약초를 캐어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뿐 오로지 역사 밝히기에 골몰하다가 1897년 이기의 문하에 들어간 이후 여러 권의 역사서를 발간하였다.

 

이기는 정약용의 학통을 계승한 실학자로서 당대의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또한 단군세기를 쓴 이암과 태백일사를 쓴 이맥의 직계 후손으로 우리의 고대사에도 해박하였다.

이기의 지도아래 계연수가 발간한 역사서의 결정판이 바로환단고기이다.

1911년 계연수는, 그의 벗이자 독립운동 동지인 홍범도와 오동진 두 사람의 자금 지원으로 만주 관전현에서 환단고기30부를 간행하였다.

이로써, 9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외세에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동방 한민족이 절망과 통탄의 벼랑 끝에 서 있던 그때, 민족의 국통 맥을 천지에 선포하는 위대한 사서가 출간된 것이다.

 

계연수 선생의 죽음을 지켜본 이유립 선생

 

운초는 항일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천마산대, 서로군정서 등의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57세 때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런데 당시 압록강에 처참하게 버려진 그의 시신이 수습되는 광경을 지켜본 한 소년이 있었다.

 

그가 바로 훗날 환단고기를 널리 대중화시킨 이유립 (1907~ 1986)이다.

이암과 이맥의 후손인 그는 평안도 삭주의 유지이자 독립운동가이던 이관집(李觀楫)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유립은 계연수와 친했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시절부터 역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 13세 때(1919) 단학회가 주관하는 교육기관인 배달의숙(倍達義塾)에 들어가 계연수, 이덕수 두 스승의 강의를 들으며환단고기를 공부하였다.

그 후 독립군의 통신원으로 활동하기도 하고(14), 신간회의 삭주 지부를 결성하는(21)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45년 광복 직후에는 단학회 기관지태극을 발행, 그 주간(主幹)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에, 계연수 사후 그에게 전수된환단고기를 가지고 월남하였다.

이후 단학회(檀學會)를 단단학회(檀檀學會)로 개칭하였고, 1963년 대전에 정착한 이후에는 후학을 기르며 역사연구와 강연에 전념하였다.

 

환단고기 출간의 우여곡절

 

한문과 역사에 해박한 이유립에게 여러 사람이 배움을 청하였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오형기(吳炯基)였다.

오형기는 한국 고대사의 실상을 알고자 하는 구도자적인 의지를 가지고환단고기공부에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1949년 이유립에게환단고기를 빌려가 필사한 후 발문(跋文)을 써 붙였다. 그러나 책을 지은 사람이 쓰는 것이 상례인 발문을 오형기가 임의로 쓴 것에 대해 이유립은 심기가 편치 않았다고 한다.

이 필사본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이유립의 문하생 조병윤이 1979년에 서울의 광오이해사(光吾理解社)에서 이 필사본을 영인하여 100부를 출판한 것이다.

이른바 광오이해사본환단고기가 이유립의 허락도 없이 시중에 배포되었다.

이에 사태 수습 차원에서 이유립의 단단학회는 문제의 발문을 삭제하고 오자를 바로잡은 새로운 필사본을 만들었다.

원고는 1979년 그해에 완료되었으나, 출판비가 없어 1983년에야 배달의숙을 발행인으로 하여 100부 발간하였다.

 

일본인의 환단고기 왜곡

 그 무렵 환단고기가 일본어로 번역· 출판되는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광오이해사본을 입수하여 검토한 일본인 변호사 가지마 노보루(鹿島昇)환단고기를 일본 천황가의 뿌리를 밝혀 줄 수 있는 책이라 여긴 것이 발단이었다.

가지마는 환단고기는 아시아의 지보(至寶)’라 극찬하고 자국의 정계와 재계의 후원을 끌어내어 1982실크로드 흥망사라는 부제를 붙인 일본어판환단고기를 출간하였다.

 

하지만 이 일본어판은 환국 배달 고조선 고구려 대진국(발해) 고려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를 배달 야마토 일본 나라일본 헤이안시대로 이어지는 일본 역사로 둔갑시켜 놓았다.

동방 한민족의 역사가 중동 유대족의 역사에서 발원하였다는 황당한 주장도 하였다.

 

뒤이은 환단고기 번역본의 출간

 

당시 국내에서는 이유립과 임승국이 우리 고대사를 월간지자유에 수년 동안 연재해 오던 터라, 한민족의 상고 역사와 신교 문화가 조금씩 알려지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인이 쓴환단고기가 한국에 역수입되어 소개되자, 한국 역사학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대중의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1985년 당시 고등학교 교사이던 김은수가 첫 번역서를 낸 이후 오늘날까지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환단고기번역본이 출판되고 있다.

잃어버린 한민족의 시원 역사와 문화를 복구하려다가 일제의 역사 도륙의 칼날에 무참히 죽어간 계연수와 그의 스승 이기,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역사 연구에 헌신하며환단고기를 널리 알린 이유립! 이들은 모두 한민족 사학의 아버지라 불러 마땅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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